Message No. 9.
첫째 날의 창조사역
하나님은 첫째 날 빛을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 (빛을 나눔 – 빛과 어둠으로 그리고 빛은 낮, 어둠은 밤) 하니 빛이 있었다. “흑암이 깊음 위에”란 우주의 어둠을 의미한다. 텅 빈 우주 그곳에 일단 빛이 들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질계의 손이요, 도구요, 원소와 같다. 신학자들은 이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의 모든 빛의 근원은 태양이라고 생각한다. 해가 뜨면 밝고 해가 지면 어둡기 때문이다. 해가 뜨면 낮이고 해가 지면 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를 잘 읽어보면 그것이 정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분명히 해는 넷째 날에 창조 하셨다. 그런데 본문은 해를 창조하시기 전 빛을 창조한 것으로 기록됐다. 그렇다면 이 빛은 태양을 만들기 위한 원소로 사용하기 위해 창조하신 걸까? 아니면 …?
여기서 우리는 이 빛이 어떤 빛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태양계의 밖까지 비춰지는 빛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 자체가 찬란하고 너무너무 밝은 빛의 덩이라고 했다. 아무도 처다 볼 수 없고, 잘못 처다 보다가는 바울처럼 눈이 멀어버릴 만큼 강한 빛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빛을 만들어 그 빛을 낮과 밤으로 나눴다고 했다. 이는 낮과 밤은 태양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첫째 날에 창조된 빛과 어두움에 의해 구분된다는 말이다. 태양은 단지 공중에 걸려있는 시계일 뿐이라는 얘기다 .
그렇다. 빛은 태양이 전부가 아니다. 태양이 있기 전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다. 이때는 인간이 창조되기 전이다. 해가 없이 낮과 밤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해가 없으면 낮과 밤도 없다. 온전히 해가 낮과 밤을 지배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는 시간적인 의미다. 세상에 시간이 들어온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빛과 어둠을 타고 시간이 흐르게 된 것이다.
본래 물질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환상이라고 했다.( Time is Illusion). 즉 시간이란 만들어서 정해진 하나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은 지구에서 이해하는 그 시간 밖에 존재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시간이 얼마나 실체와 다른지가 현대 양자 물리학의 여러가지 발견과 “인터 스텔라” 같은 영화를 통해서 어렴풋이라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성경 여러 군데서 하나님의 존영이 소개 된다. 천지 창조 때 보여 진 하나님은 차분하고 합리적이고 사랑이 넘쳐흐른다.
하나님은 낮과 밤을 구분 짖는 빛을 만들 때 무엇을 모델로 창조하셨을까?
물론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 하셨다. ‘빛이 있으라’ 이는 잠깐 사이에 하면 끝나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이 간단한 말씀을 하실 때 하루나 걸리셨을까?
항상 말이 있기 전에는 그 말하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있게 된다.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을 다듬는다. 말을 하려고 하는 것과 다른 것과의 관계들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이러한 일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생각이 모두 정리되면 말을 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하시기전 하나님은 이미 빛을 그리고, 그 빛의 역할과 여러 가지 형태를 생각속에서 창조 하신 후 그 빛이 세상에 있으라는 말을 하자 그 빛이 창조되어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빛으로 낮과 밤을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숙고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했다. 그런데 그 빛으로 어둠을 나눴다고 했다. 이는 빛으로 어둠을 창조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빛이 어둠을 품고 있었고 그것을 나눴다가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빛 속에서 어둠을 찾아내신 것일까? 빛도 어둠을 수행하고 다니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물론 하나님이 밤을 만들 때 재료로 사용한 어두움은 본래 있던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빛이 들기 전 있었던 어둠을 모아 빛과 짝을 이루게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 있어지는 순간, 모든 어두움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그렇다면 빛이 있는 곳에 반드시 어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빛이 꺼지면 어둠이 오는 건 태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 된 것인지, 정리를 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도 빛이 지면 어둠이 들고, 선이 지면 악이 들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인지 아니면 영의 법칙인지는 알 수 없으나 법칙은 법칙이다. 그러나 우주는 빛과 어둠이 어울러져 낮과 밤을 이룬다. 어둠만 있어도 안 되지만 빛만 있어도 안 된다. 어느 하나로는 하루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 했지만 어둠도 창조하셨다. 일부러 어둠을 창조 했다는 말은 없으나 어둠을 사용했다는 말은 있다. 핵심은 조화다.
둘이 한 짝이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한 태초의 어둠은 악이 아니었다. 빛과 어둠은 둘 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 있었다. 둘 다 하나님의 사역의 산물이다. 어둠을 악의 상징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다.
밤은 안식을 주고 낮은 활력을 준다. 밤이 없으면 사람은 안식을 얻지 못한다. 안식을 얻지 못하면 사람은 낮을 살수가 없다. 반대로 낮을 살지 못하면 밤에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 이것이 낮과 밤의 법칙이다. 둘이 합쳐져야, 둘을 다 조화롭게 사용해야 인간의 삶은 건강해 진다. 주님이 주시는 것은 빛이든 어두움이든 위와 같이 평안을 준다.
Message 10.
둘째 날의 창조 사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between the waters to separate water from water.” So God made the expanse and separated the water under the expanse from the water above it. And it was so. God called the expanse “sky”.”
태초에 거대한 해역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 수면 위를 운행 하셨다. 해역이라 함은 수분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물의 영역이다. 그러나 아직 물이 되지 못한 수면체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그 해역(waters)에 궁창(광활한 공간)을 만드신다. “해역(waters)으로부터 물을 분리시켜 물 사이에다가 거대한 공간 (expanse)을 만들자.” 물(waters)로 구성되어 있는 어떤 곳을 나누고 그 사이에 거대한 공간을 있게 하자는 말이다.
물과 물을 나누면 물 아래에 물의 영역이, 물 위에 또 하나의 물의 영역이 생긴다. 둘 다 물의 세계다. 그런데 두 개의 물의 세계 중간에 거대한 공간을 만들면 위, 아래의 물은 그 공간(궁창)을 중심으로 하나는 궁창 아래의 물, 또 하나는 궁창 위의 물이 된다.
이를 문자적으로 풀이하면 커다란 물을 반으로 쪼개어 반쪽은 위로, 다른 반쪽은 아래로 나눔으로서 물과 물 사이에 공간이 있게 한다. 그 공간이 궁창 즉 하늘(sky)이다.
이 하늘 사이로 하늘 위에 있는 물과 하늘 아래에 있는 물로 나누신다. 하늘 위에도 바다 같은 물의 영역이 있고, 하늘 아래도 물의 영역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물 위에 있는 하늘과 물과 물 사이에 있는 하늘은 어디를 뜻하는 걸까?
하늘에 물을 만드는 법칙은 존재 하지만 물은 없다. 어떤 학자들은 하늘에 있던 물이 노아 홍수 때 터져 땅에 쏟아 졌다고 하기도 한다. 성경에는 노아 홍수 당시 궁창이 터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궁창이 그 궁창을 뜻 한지는 나와 있지가 않다. 어찌 되었든, 태초에 하나님은 두 개의 물의 영역을 만드셨다.
지금도 하늘은 엄청난 물의 세계다. 한 순간에 세상을 삼켜버릴 것 같은 양의 물을 쏟기도 한다.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물로 변할 수도 있다. 이 물을 담고 있는 것은 구름이다.
구름은 그냥 솜 같이 공중에 둥둥 떠서 다닌다. 아무리 봐도 그것이 하늘에 있는 물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구름은 서로 뭉쳤다 떨어 졌다를 반복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이 비를 내리게도 한다. 억수로 많은 양의 비를 내릴 수도 있다. 거대한 바다의 밑이 아예 무너져 버린 것처럼 물을 쏟기도 한다. 이것은 자연의 조화 혹은 신비로운 법칙이다.
그러나 그 물은 하늘에 있는 바다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물을 만들어 낸다. 그들 자신이 비가 되기도 한다. 그 많은 양의 비가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것도 신비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입자 문리학에서는 모든 것이 입자(particles)라고 한다. 그것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형체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태초에 물을 원료로 하여 하늘을 만들고, 땅위의 물을 만들고, 그것에 형체를 입혀 하나는 바다로 하나는 하늘의 바다로 명명하였다. 천지창조의 원소가 물이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하늘에도 입자고, 땅위에도 입자다. 그것을 풀면 에너지가 나오고, 에너지를 풀면 움직임과 법칙이 나온다. 하늘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원리와 법칙들이 있다. 바람이 다니는 길을 비롯하여 구름이 다니는 길, 공기의 존재, 그것들의 만남, 거기서 파생되는 파장과 생성되는 에너지 등등 그 모든 법칙과 원리들이 공중에 설치된 것이고 이제야 인간은 그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다.
달나라를 다녀 온 우주인들이 우주를 날다보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된다고 말한 것을 글로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둘째 날 물을 나누고, 하늘과 궁창을 만들었을까? 하나님의 천지 창조 과학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를 하시기 전 이미 천지 창조에 대한 설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에 대한 기초 공사를 이렇듯 깊게 하셨다. 천지 창조의 뼈대를 정성스럽게 놓으셨다. 그것의 첫 번째가 빛이었다. 그 빛을 원료로 낮과 밤을 만드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하늘에 궁창을 두고, 물을 가두어 놓은 것은 앞으로 창조하실 동식물들을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때에 따라 비가 내리고 햇빛이 내리는 것이 하나님이 만세전에 이미 우주 안에 심어놓은 법칙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땅이 형성되기 전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신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사역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을 통해서 살고, 물을 통해서 활동할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위하여, 하나님은 미리 설계를 하시고, 계획을 하시고, 그것들이 자연적으로 움직이도록 법칙을 심고 계신 것이다.
Message No. 11.
세 째 날의 창조 사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 under the sky be gathered to one place, and let dry ground appear.” And it was so. God called the dry ground “land”, and the gathered waters he called “seas.”(창 1장 9-10)
이제 하나님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물을 한 곳으로 모이라 한다. 세상의 흩어져 있던 모든 물들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한 곳으로 모아지자 하나님은 그곳에서 다시 마른 땅을 불러낸다. 그러자 물속에서 마른 땅이 올라온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른 땅을 “육지”, 모아진 물을 ‘바다“ 라고 부른다.
그동안 물이 한곳에 모여 있는 있었던 것이 아니라 궁창을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물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속에 있던 땅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최종적 입김에 따라 움직인다. 하나님 안에는 생물, 무생물 구분이 없다. 바위도 하나님의 말을 알아듣고, 돌들도 하나님의 말을 알아듣고 순종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과 대조를 이룬다.
마른 땅이 물에서 나왔음을 알려주는 창조 사역이다. 하나님은 왜 이때 마른 땅을 창조 하셨을까? 장차 마른 땅으로 다른 창조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이렇듯 질서가 있다. 창조 전 설계가 있었음을 암시해 주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과 설계대로 세상을 창조 하셨음을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말씀을 하시기 전 긴 생각을 거쳐서 말씀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단 한 번의 착오가 없고 수정이 없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말을 하면 그 말대로 되어버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도 말을 다룰 때 이와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바다에 물고기를 심고, 땅에 생물을 심으실 준비를 마치신다. 천지 창조의 터를 닦았다. 이것이 창조에 있어서 기초 공사다.
“하나님이 가라시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각기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장 11-12)”
드디어 하나님은 물에서 불러낸 땅에서 식물을 불러낸다. 땅이 식물이 있으라 하자 식물을 낸다. 땅과의 소통이지만 말의 능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한 가지 집중 할 것이 땅이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짐과 동시에 식물을 내고 열매 맺는 나무와 여러 종류의 다른 나무를 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무“라는 말에 주의 하자. 이 말은 이미 자라서 성장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나무 가운데는 수 십 년 수 백 년 나이든 나무도 있었을 수 있다. 또한 땅에 있는 돌이나 바위도 나이가 먹은 상태라는 뜻이다. 그것이 몇 억년 혹은 몇 백 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한 날 한 시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천지 창조는 이렇듯 신비하다.
땅위에 있는 모든 식물의 원소가 흙이다. 그들은 모두 흙에서 왔다. 도대체 흙이 무엇인데 식물을 낼 수 있었을까?
흙의 속성은 창조성이다. 흙은 말할 수 없는 생명을 품고 있다. 최초의 원소가 그랬으니까 그 원소에서 나오는 다른 원소도 그럴 수밖에 없다. 만물의 원인인 하나님은 생명이다. 창조의 생명이다. 그래서 속에는 창조적인 생명이 있다. 이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은 그냥 땅이 아니다. 생명이 나오게 하고 생명이 자라게 하고 다른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능력 자체이다. 땅은 항상 여러 가지 생명으로 충만하다.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떤 종류로든 생명도 서식할 수 있다. 땅에, 땅위에, 땅 아래는 생명의 서식지고, 생명의 모임 처다.
땅은 지금도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어 내고 있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도 식물이 있고, 전갈이 있고, 독사가 있다. 이것도 생명이다. 생명은 생명과 생명을 공유한다. 이것은 흙이 지닌 생명의 요소다.
아마존 정글에 가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식물과 생명체가 서식한다. 땅이 생명을 내고 생명을 기르고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의 본성이고, 본능이기 때문이다.
땅은 끝없이 많은 식물을 내고 나무를 내고 열매를 낸다. 거기에는 이유도 없고, 설명도 없다. 땅은 그렇게 창조되었다.
지금도 흙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신비한 미생물을 품어서 길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땅을 그 흙으로 조성하신 것이다.
땅은 살아있다. 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땅은 살아서 쉬지 않고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있다. 땅은 물에서 나왔다 그래서 땅은 물을 먹고 산다. 물은 땅의 양식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우주의 법칙이다. 이 얼마나 과학적인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 되었다. 이것이 셋째 날에 이루신 창조 사역이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Message No. 12.
넷째 날의 창조사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 (낮과 밤) 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며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라.”(창 1장 14-18)
우주에는 인간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그리고 알았다가 몰라져버린 많은 법칙들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하늘의 궁창에 빛을 창조 하시고 낮과 밤을 가르게 했다. 하나님은 또 하늘의 궁창에 빛들을 있게 하신다. 그리고 큰 빛은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빛은 밤을 주관하게 하신다.
그렇다면 이 빛이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창조하신 빛과 어떻게 다를까? 첫째 날에 창조 하신 빛을 원료로 하늘의 광명들을 창조하신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광명을 창조 하신 것일까? 정확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먼저 넷째 날의 사역에서는 하늘에 빛이 있으라고 명하신 후 다시 그 빛이 하늘에 떠서 땅을 비추라고 말씀 하신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다시 하늘에 떠서 땅을 비추는 빛을 큰 광명과 작은 광명으로 나누시고 큰 광명으로는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는 밤을 주관하게 하신다. 하나에게는 낮을 맡기시고 다른 하나에게는 밤을 맡기신 것이다.
이 광명은 해와 달을 뜻한다. 큰 광명은 해를 뜻하며 작은 광명은 달을 뜻한다. 그들이 각각 다른 역할 분담을 받는다. 해와 달이 지배하는 곳을 태양계라고 부른다. 현생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태양계를 중심으로 창조되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밤을 주관한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땅위에 서식하는 모든 동식물은 밤에는 안식을 하고 낮에는 활동을 한다.
안식은 쉬는 것이다. 수면을 취하는 것이다. 모든 동식물은 밤엔 잠을 자면서 쉰다. 잠을 자야만 하는 이유가 또 있을 것이다. 잠을 자야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밤에는 달이 있음으로도, 별이 있음으로도, 은은한 달빛에 의해, 초롱초롱한 별빛에 의해, 모든 동식물은 깊은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풀벌레소리까지도 인간에게 쉼을 주는 멜로디가 된다.
밤 동안의 안식을 통해 낮에 활동할 에너지를 공급 받는다. 이것을 에너지 충전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우주에 밤이 없다면 우주는 존재 할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은 달이 뜬 밤 그 달을 처다 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해 왔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다가/ 은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 지고./”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아이 같은 동심에서 나온 시다.
“타향살이 몇 해든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 여 년에/ 눈물만 흐르네./” 달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곳에서 인간의 인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자아를 비쳐보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다. 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항상 인간의 도리를 일깨워주는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달을 잃었고 밤을 잃었다.
하나님은 하늘에 창조해 놓으신 빛으로 태양이 되게 했다. 그리고 이 땅의 낮을 주관하게 했다. 달이 인간의 내면의 세계, 즉 정신의 세계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태양은 인간의 육체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공급원이라 할 수 있다.
태양은 인간에게 수많은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비타민을 비롯하여 미네랄,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마시는 공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이 역시 생명력이다. 달에도 생명력이 있지만 해에도 엄청난 생명력이 있다. 생명력은 창조성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해와 달을 연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해와 달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그 안에 있는 엄청난 법칙을 발견한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 그 법칙은 만들지 않으면 존재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스스로 만들어 질 수도 없다. 우연은 더더구나 아니다.
이 우주에는 우연히 된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 얽혀져 있다. 그러나 너무나 질서가 있다. 하나님은 별들을 만들어 하늘의 공간을 장식한다. 하늘에는 바다의 모래알 같이 많은 별들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여 하늘에 조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하나님의 창조 솜씨를 드러내 준다.
인류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문학의 유실일 것이다. 그것을 점성술이라고 비하해 버렸다. 고대의 천문학은 천상에 있는 별자리를 통해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예측 할 수 있었다. 예수님 당시 동방 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을 알고 별을 보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서 경배 했다. 이는 당시 세대로부터 수 천 년 전해 내려오던 입증된 과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천문학은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하늘에서는 지금도 이런 징조들이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을 해득해 내지 못한다. 그 지식이 제도권 교회에 계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신이 가 하나님이라는 그 사실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졌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존재들을의 운헹 질서와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넷째 날의 창조 사역의 의미를 헤아릴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언급하신 “시대의 징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Message No. 13.
다섯째 날의 창조 사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동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 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 1장 20-21)”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이여 생물들을 번성케 할지라.” 여기 번성케 하라가 영어로 ‘Teem’ 인데 이는 충만하게 하다. 라는 뜻도 있다. 어느 것을 취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고기를 만들 때 좀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먼저 물로 하여금 생물들을 충만하게 하라고 명하셨다. 물속에 있는 여러 가지 미생물들을 비롯하여 물 자체를 생명의 물체들로 충만케 한 것이다. 다음으로 물의 생물들을 창조 하셨다. 큰 물고기와 다른 생물들을 창조하셨다.
여기에 들장 하는 물이 바다 물인지, 아니면 호수나 강, 즉 민물인지 확실하지 않다. 여기 등장하는 물이 바다 물이라면 민물에 있는 생명체나 물고기는 언제 창조 하셨느냐 라는 질문이 나온다. 민물에도 바다 속 못지않은 많은 생물들이 있고 많은 물고기 그리고 생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자사역 속에 그것에 대한 확실한 내역이 나와 있지 않다.
반대로 만일 여기 등장하는 물이 민물이라면 바다 물에 있는 생명체들은 언제 창조 하셨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성경에 민물과 바닷물을 나누는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아직 바다와 호수가 구분이 되지 않았을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하나님은 이미 민물의 생명체와 바다의 생명체를 구분하여 창조하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달과 해를 큰 광명과 작은 광명으로 표현 한 것과 같다.
물에는 많은 식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법칙이 들어 있다. 바다에도 많은 해초들이 들어 있다. 그들은 모두 바다의 생태계와 연관이 되어 있고 모두 독특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에너지라고도 부르며 아니면 어떤 원소? 아니면 어떤 생명체? 라고도 부를 수 있다.
물속에는 마찬가지다. 물은 민물이든 바닷물이든 생명의 상징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을 성령 혹은 생수의 강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법칙이 있다. 거미줄 같은 법칙이다. 우주의 법칙이기도 하고 자연의 법칙이기도 한다.
바다에는 수많은 법칙이 있다. 바다도 스스로 생명을 내고 생명을 기르고 생명을 창조한다. 이것이 바다의 창조성이다. 그것을 인간이 모르는 바다의 신비라고 해두자. 인간의 과학이 최고점에 이른 지금까지도 그런 바다의 신비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계시록을 보면 바다를 관리하고 관장하는 천사들이 등장한다. 그것을 다른 말로 바다의 신, 물의 여신이라고도 부른다. 우주에 있어서 바다는 이렇듯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바다를 하늘의 천사에게 수호하게 하신다.
그래서 바다는 눈으로 불 수 없는 영적인 세계의 천사들이 지키고 있다. 그런데도 계시록에는 또 그 바다에서 악한 영들이 올라오고 있음이 나타난다. 학자들은 바다를 세상으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 학자들의 비유가 밎는지 틀리는 지 우리는 확인 할 수 없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 하셨다고 했다. 여기서 성경은 처음으로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바다에는 수 천 수 만 종류의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있다. 그 물고기들은 바다라는 한 생물세계를 이루고 산다.
하나님은 물속. 그리고 바다 속의 생명체들을 창조함과 동시 공중의 새들을 창조 하셨다. 각종 날개달린 새들을 창조하셔서 하늘을 날게 하셨다. 하늘에 생명의 정원이 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들을 만들어 숲으로 보내지 아니하셨다. 공중을 날게 하셨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나는 새를 축복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 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천지 창조를 시작하신 후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에게 복을 주는 것은 처음이다. “God blessed them and said “Be fruitful and increase in number and fill the water in the seas”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것이 비록 인간의 먹이로 창조되었든지 아니면 지구를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 창조 되었든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이들을 똑 같이 축복하셨다. 인간의 눈으로 그것이 미물이고, 미생물이고, 하잘 것 없는 곤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에서 온 생명체는 물로 돌아가고, 흙에서 온 생명체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물의 한 구성원이고 흙의 한 구성원이다. 인간이 흙에서 온 흙의 한 구성원인 것과 같다. 모두 우주를 이루는 우주의 한 구성원들이고, 모두 우주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우주의 한 부분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섯째 날에 이루신 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