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화를 주는 기쁜 소식 No. 27.
공중의 권세 잡은 자 (1) : 더러운 영의 출생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아노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 16장 13-14절)
요한 계시록은 영계를 보여준 책이다. 마지막 때 영계에서 일어날 일들을 요한에게 미리 보여주며 기록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전해 주셨다. 그래서 계시록을 인류의 시계요, 계절이요, 달력이라고들 말한다.
요한 계시록은 크게 3파트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교회에 주는 지침, 둘째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그림, 셋째는 영적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중요 이벤트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물질계가 영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영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파장이 물질계에서도 나타난다. 요한이 보고 들은 것은 영계에서 일어날 전쟁과 지상에 나타나는 파장 그리고 공중에서 부어지는 영적 재앙과 지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아주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계시록은 영이 영에게 보낸 메시지라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가 맞다. 그러나 일곱 교회의 영(Angel)에게 보낸 편지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속히 될 일을 교회의 영들에게 보낸 편지임을 먼저 알고 읽어야 한다.
어떤 분들은 계시록은 지구의 종말에 대한 예언이라고 하기도 한다.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승하면 지상의 악도 승할 것이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힘을 잃으면 지상의 악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공중에서 패하면 그의 힘을 받아 활동하는 자상의 모든 악들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반면에 의를 행하는 성도들의 힘은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지상의 악은 힘이 약해져서 의와 선에 밀리게 된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힘을 받아 탐욕, 사기, 불법, 권모술수로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지고, 어둠 가운데서 은밀하게 저질렀던 죄악이 쉽게 드러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쉽게 망하고 향락이나 죄악의 감춰짐의 수명이 짧아질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을 보고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갖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시대를 분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말씀이다.
지상에서 이적을 행하는 영,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아노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는 더러운 영의 출현을 말한다. 3개의 더러운 영의 출생이다. 이들이 지상의 임금들 앞에서 이적을 행한다고 하고 있다. 목적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한 세력을 모으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나는 용의 입, 하나는 짐승의 입, 하나는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태어난다. ‘거짓 선지자’란 사탄의 선지자다. 어쩌면 이는 거짓 예언을 타고 태어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어딘가에 있는 악령의 예언이라는 뜻이다. 그 예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것은 히브리인의 경전일 수도 있고, 모하메드의 경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예언서 일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떤 예언이 있었고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더러운 영(impure spirit)이란 음란, 음행, 질투, 탐욕의 영을 말한다. 이들의 태어남과 동시 지상에서는 음란, 음행, 탐욕이 승하게 된다는 계시다. 여기서 말한 “천하 임금들”이란 세상의 영향력 있는 자들을 말한다. 요한 이 이 계시를 받을 당시 사회는 많은 왕들이 있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어느 한 군의 군수도 왕으로 칭했고 시장도 왕으로 지칭했고 도지사도 왕으로 칭했다. 그러니까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적을 행하는 목적도 사람을 현혹하기 위해서다. 남의 이목을 뺏어와 자신에게 향하게 하기 위해서다. 신령하다는 여자 목사가 안수한 것과 같다. 그 여자 목사를 잉태한 그 목사는 짐승으로, 거짓 선지자로 비유될 수 있다.
용의 입에서 나온 영적 힘으로, 이적으로, 사람 마음을 현혹하고, 표적으로 사람 마음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표면적으로 나타난 이적이나 표적으로는 영의 실체를 파악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하나님과 전쟁을 했다면 어떤 방법으로 전쟁을 했을까? 무엇이 전쟁일까? 지상에 있는 왕들을 모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지상의 왕들을 데리고 천상을 쳐들어간다는 것일까?
하나님의 보좌는 천상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나 있다.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의 나라다. 천국이다. 사탄이 지상의 세력을 모았다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공격하기 위함이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은 어디인가? 우리 마음이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은 사탄의 공격 대상이다. 어쩌면 대규모의 공격을 의미 할 수도 있다. 순결한 마음에 경쟁과 탐욕을 쏟아 부음으로서, 축복으로 포장된 탐욕, 음행, 파벌, 미움 시기, 질투, 원망, 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쏟아 붓는 것, 그리하여 사람의 영성과 인성을 송두리 채 파괴하는 것, 그것이 사탄의 공격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영계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영계에서 내리는 재앙의 실체를 볼 수 없고 알 수 없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귀가 있다. 하지만 성령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사탄의 소리도 듣지를 못한다. 그러나 들을 것은 들어야 하고 볼 것은 봐야 한다. 그동안 지상에 존재했던 악(질병 포함)과 선 가운데 수많은 것들이 왔다가 사라졌다. 그것들 중에는 영적인 세계의 것들이 물질의 형체를 입기도 했다. 계시록은 이런 차원에서 접근을 하면, 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주기도 한다.
사랑과 평화를 주는 기쁜 소식 No. 28.
공중의 권세 잡은 자 (2) : 더러운 영들의 활동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을 지어다.”
어떤 분들은 세상 끝에 일어날 아마겟돈 전쟁을 중동에 있는 특정 지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훌륭한 접근 방식이다.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이 성경을 읽고 연구 했을까를 생각하면 존경이 간다. 그분의 말대로 정말 그랬으면 한다. 그러나 계시록은 영이 영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이것이 성경의 신비고, 영감이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상황마다, 그리고 개인 개인에게, 성령께서 매 순간 필요한 의미로 깨닫게 해주는 말씀이라고 본다.
제국(로마)에 대한 예언이면서 세상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이미 이루어진 예언이면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이나 시대에 필요한 어떤 의미라도 알게 된다면 감히 한 말씀도 밖으로 내 뱉을 수 없는 예언이다. 스스로 벙어리가 될 수도 있다. “귀 있는 자”만 들어야 한다. 들었다고 전할 수도 없다. 알았다고 알릴 수도 없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Angel of the church)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냥 나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종말 전쟁(제 3차)을 치루면서 세상의 모든 군인들을 중동의 특정 지역으로 모아놓고 전쟁을 하겠는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영적인 세계의 법칙을 설명한 무수한 암호 같은 말들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물질세계 곧 우주의 법칙을 가르치고 강조한 말들도 섞여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성경은 거의다가 원리고 법칙이다. 그것이 이 세상의 것이 됐든, 우주의 것이 됐던, 천상의 것이 됐던, 대부분이 원리고, 원칙이고, 법칙같아 보인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땅에서 강건하리라.” 언뜻 보면 하나의 교훈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우주의 어떤 법칙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희 말로 너희는 의롭다함을 받고 너희 말로 너희는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의 법칙이다. “믿는 자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믿음의 법칙이다.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마음의 법칙이다. 말은 단순히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하나의 능력이고, 권세고, 왕국이고, 세계다.
성경 속 어떤 것은 이 물질세계에서 일어날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이다. 어떤 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즉, 2천 년 전 그의 제자들이 겪게 될 일들에 국한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와 고난이 그것이다. 베드로의 배반에 대한 예언도 있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12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있고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된 것도 있고 로마에만 해당된 것도 있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해당되는 것도 있다.
우주의 법칙을 누가 정해 놨는지, 이런 법칙은 언제부터 존재 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실제 그 법이 작동을 하는지, 안 하는 지가 중요하다.
“귀는 들어도 알지 못하고 눈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마음이 깨닫지 못하고”.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3일 안에 다시 지으리라” , 여기서 성전을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지상에서 자기 세력을 모아 사람들이 천국을 쳐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인간의 마음으로 쳐들어간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물질세계의 일과 영계의 일이 섞어져 있다. 어떤 곳에서는 평화를 외치고 어떤 곳에서는 불화를 말한다. 어떤 곳에서는 불화를 말하고 어떤 곳에서는 사랑을 외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요”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리라.”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라”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고”
어떤 것은 영적인 것과 물질계의 교훈이 섞여져 있고 어떤 것은 긴 세대를 간격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두 사건을 붙여져 설명한 것이고, 어떤 것은 아예 영적인 것만, 어떤 것은 아예 물질적인 것만을 주제로 가르침을 주셨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1:1) 여기에 등장하는 사탄의 정체도 그렇다.
여기에 나온 ‘속히’에 대한 개념도 이 세상의 관념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영적인 관념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부담이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고’ 라는 천상의 시간관념을 도입한다면 ‘속히’라는 단어가 지상의 수 천 년을 의미할 수도 있고, 이 세상의 시간관념을 사용한다면 계시록의 예언은 벌써 이루어 졌었어야만 한다. 아니면 지금 거의 끝나가야 한다. 한 문장 안에 있는 단어도 이 세상의 잣대와 영적인 잣대를 동원해야만 해득이 가능하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이것은 이 세상의 짓대로, 저것은 영적인 잣대로 저울질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까? 이것이 성경이다.
많은 사람들은 악마는 아주 무시무시하게 생긴 짐승 같은 형체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뿔이 달리고 이빨이 나오고 얼굴이 깨지고 틀어지고 흉측한 형상을 하고 — 지금까지 악마에 대한 묘사는 그렇게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그의 형체는 정 반대다. 그래서 속기 쉽다. 그의 형체는 아름답고 화려하다. 사탄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다. 많은 능력을 지닌 자다. 그의 종들에게 많은 것을 줄 수가 있다. 이 세상의 향락과 복락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사탄의 실체다. 성령의 모습으로 활동하고 성령의 옷을 입고 활동하는 사탄, 그러나 사탄이 머물다 간 자리엔 언제나 불행이 남게 된다.
사랑과 평화를 주는 기쁜 소식 No. 29.
공중의 권세 잡은 자 (3) : 미움의 위력
“너 아침의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덮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아사야 14장 12절)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광명의 천사, 루시퍼라고 부른다. 이들을 광명의 천사라고 이름 했다. 이들이 처음엔 아름다운 영, 화려한 영 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들의 속성은 더럽고 가증스러우나 그들의 외형적인 활동은 화려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다.
하나님의 축복이 영과 육의 축복이라면 사탄의 축복은 육의 축복이다. 사탄이 주는 것은 모두 육신의 낙을 위한 것일 뿐 영적인 낙을 줄 수가 없다. 사탄은 영적인 낙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이 주는 모든 복락에는 죄가 들어있고, 그가 주는 축복에는 독이 들어있다. 화려한 향락과 물질적인 부에도 불행이 들어있고 고통과 비극이 숨어있다.
예수님께 다가와 시험하던 사탄은 세상의 모든 영화를 가졌다고 했다. 영화는 화려함의 상징이다. 화려함을 가졌다면 그 모습 또한 화려할 것이다. 사람들이 한번쯤 흠모해보고 싶어 할 아름다운 외형이다.
성경에는 악마가 인간에게 접근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영적인 방법과 물질적인 방법이다
악한 영이 물질세계에 나타날 때는 물질세계의 옷을 입는다, 예수님처럼 육체를 입고 태어나든지 아니면 성령처럼 이미 존재하는 사람에게 임하여 그 사람의 마음을 뺏어서 사용한다. 사탄이 육체를 입고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는 영혼 없는 육체다. 이 세상에는 이런 영혼 없는 육체가 많다.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But they will have to give account to him who is ready to judge the living and dead. For this is the reason the gospel was preached even to those who are now dead, so that they might be judged according to men in regard to the body, but live according to the spirit. 벧전 4:5-6)) 죽은 자는 영혼이 없는 자다.
더러운 영들은 빛의 천사로 변장하여 세상을 살아간다. 예수님과 비슷하게 변장을 한다. 성령님과 비슷하게 변장을 한다. 그 의미는 그도 예수님이 하신 일을 흉내 내고, 성령의 역사를 흉내 낸다는 암시다. 예수님처럼, 성령처럼 인간에게 다가온다는 뜻이다. 인간 속에서, 인간 밖에서 성령처럼 역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행적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란 인간의 불행을 뜻한다. 인간의 불행이 사탄의 기쁨이다.
사탄의 영을 받은 그의 종들도 의의 종으로 변장한다. 인간은 은연 중 사탄의 영을 받게 된다. 그 중에는 잘나가는 종교 지도자도 있을 수가 있다. 외형적으로 화려하고 우러러 봄직한 종교 지도자들이 있을 수 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분이 그일 수 있다. “And no wonder, for Satan himself, masquerades as an angel of light. It is not surprising, then, if his servants masquerade as servants of righteousness.” (고후 11장 14절) 사탄은 뿔 달린 괴물이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광명의 천사로 변장한 사탄이 이미 그의 종에게 나타나 그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행할 힘을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처럼, 성령처럼 변장을 한 사탄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임하여 주님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을 팔아 그들을 속이고 그들에게 영적 능력을 주면서 죄의 열매를 맺게 유혹하는 것이다.
성경은 둘 다 영적 간음이라고 했다. 사람을 통해서, 성령처럼, 성령이 있는 곳을 따라다니며, 아무도 그의 진짜 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위장을 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여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 했나 시험하라-” 라고 당부 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수 천 년 동안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훼방하면서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어 왔다. 그들은 인류의 모든 조직 속에 들어가서 분쟁을 일으켰고 불화와 미움과 원망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직을 만들어서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흉내 내면서 더러는 노골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낚아갔다.
여기서 성령의 흉내를 내고, 예수님의 흉내를 낸다는 것은 예수님이 외친 복음을 외친다는 것이다. 그들도 믿음을 외치고, 구속을 외치고, 부활을 외치고, 사랑을 외치고, 자유를 외치고, 평화를 외친다. 예수님이 외친 복음과 똑 같은 복음을 외치는데 그 결과만 다른 복음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나오기 전 누가 사탄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사랑의 이름으로 평화의 복음을 외치고, 평화의 이름으로 사랑의 복음을 외치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외치고, 정의를 외치는데 누가 그들에게 사탄이라는 명패를 붙이겠는가?
그런데 단 하나 그들의 가르침에서는 미움이 생산되고 분노가 생산된다. 경쟁이 생산된다. 그래서 열매를 쳐다봐야 한다.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나무라면 반드시 포도가 열리게 되어 있다. 믿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다. 꽃이 아니라 열매다. 열매는 빛이다. 열매는 등불이다. 열매는 소금이다.
어떤 감동적인 설교 가운데서 경쟁이 잉태되고, 미움이 잉태되고 그 설교가 떨어지는 곳에서 빈곤이 열리고 분노가 열리고, 분쟁이 열린다면 그 뿌리는 의심해 봐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경쟁이 없고, 미움이나 분노가 없고, 원망이나 다툼이 없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주님이 가르친 평화에는 불안이나 두려움이 없다.
사탄의 목적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과 멀어져 불행이 결과 되기 때문이다. 사탄의 목적은 미움과 분노와 다툼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 두려움으로 영을 죽인다는 것이다. 사탄은 영혼의 살수다. 그의 무기는 우리 안에 있다. 그가 그것들을 사용할 수 없게 없애버리고 치워버려야 한다.
사랑과 평화를 주는 기쁜 소식 No. 30.
공중의 권세 잡은 자 (4) : 사탄제사에 쓰이는 인간 제물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사람들이 용과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Men worshiped the dragon because he had given authority to the beast, and they also worshiped the beast and asked, “who is like the beast? Who can make war against him?) (계 13장 4절)
인간 세상에서 용은 왕이나 큰 인물로 상징된다. 계시록에서는 악의 우두머리로 상징된다. 그렇다면 용이 가진 권세는 어디서 온 것일까? 또 용에게 권세를 받은 짐승은 누구일까? 그 짐승은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 역사할까?
단테는 인간의 대 죄를 7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짐승으로 비유하였다. 뱀, 염소, 달팽이, 돼지, 사자 등등. 탐욕이나 교만은 악의 심장이다. 탐욕은 죄악의 알파와 오메가다. 탐욕은 악의 근원이요, 권세다. 탐욕은 기적을 일으키고 표적을 나타낼 수 있다.
우주에 있는 끼리끼리 법칙에 의해 탐욕이 탐욕끼리 뭉치면 거대한 권세가 된다. 그 권세들은 선을 배척하고 악을 무기삼아 욕구를 채운다. 영적으로 이것을 사탄과 용과 짐승을 찬양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 중에는 직접 사탄까지 숭배하는 자들이 있다. 왜? 자신들의 탐욕을 만족 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힘이 필요하고 능력이 필요해서다. 그들은 극비리에 사탄에게 제사를 드리고 사탄으로부터 영적 능력을 받아 여러 가지 영적 능력을 행사한다. 이는 소설이 아니다. 소설에서 상상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우리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한번 쯤 들은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들을 F 와 I 로 표시하겠다.
사탄 제사는 수 세기 동안 지상의 음지에서 알게 모르게 행해져 온 밀교의식이다. 이들의 제단은 대 저택이다. 군인도 접근 할 수 없는 그들의 대 저택에 제단이 만들어져 있다. 사탄제사에 쓰이는 제물은 인간이다.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제물이 드려지고 있다. 사탄 제사에 사용될 제물은 세계 각지에서 동원된다. 아마 제공하는 상인이 있을 것이다.
가끔씩 뉴스로 전해지는 아이들 실종 사건이 바로 이 사탄제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그곳에서 뛰어나온 사람들의 증언이다. 공식적으로 거론된 미국의 장벽 건설이 인간 납치, 밀수(Human Trafficking)와 마약이라 하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사탄의 제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0.01% 혹은 0.001%정도의 부자, 권력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사탄 제사를 통해서 실제 루시퍼와 영적 교류를 가져왔고, 루시퍼로부터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많은 영적 권능을 얻어 이 세상을 지배하는 도구로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드린 사탄제사의 기원은 인간이 계산하지 못할 만큼 오래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종파도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이기 때문에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 사탄의 종들 가운데 활동 구릅에 속하는 조직으로 알려진 그룹만 둘이다. F 와 I.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 졌던 이들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게 된 것은 그곳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그곳을 빠져나와 양심선언을 하면서 부터다. 도대체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 어떤 일이기에 양심선언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가 되었을까?
그 그룹의 정치적 지배능력, 경제적 지배 능력, 정신적 지배능력, 문화적 지배능력, 등등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이나 조직의 구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고, 그들의 폭로에 의해 밖으로 드러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도 어떤 것은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다.
F와 I 가 속한 나라는 보이지 않은 통치왕국이다. 보통 국가에선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을 뽑아서 나라를 통치한다. 그러나 그들의 지배는 사람들의 선출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비밀리에 세습되고 어둠속에서, 세상의 눈에 보이는 통치자들을 통치한다. 방법은 다양하다. 돈, 언론, 선동, 이런 것들을 사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게 만든다.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이가 대통령이 되면 그 대통령을 Control 한다. 그러니까 대통령위의 대통령인 것이다.
통치권자 위의 통치권자. 이 사람들은 그림자처럼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뒤에 숨어서 꼭두각시 대통령을 통해 세계를 통치한다. 필요하면 전쟁을 일으킨다.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하게 한다. 이들은 단일 정부나 같다.
이런 조직과 이런 구도는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제사장들 같은 사람들 이었다. 성경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하였다. 아무리 털어도 사형을 시킬 만한 죄를 찾을 수 없어서였다. 죄 없는 자를 놓아 주는 것은 로마의 법이고 로마의 정신이었다. 유대인들 말로 이방나라, 이방 민족의 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놓아 줄 수가 없었다. Control 그룹이 백성을 선동하여 빌라도를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왕을 Control 하고, 영주를 Control 하고, 종교 지도자들을 Control 하고, 그들을 통해 백성을 지배하는 어둠의 통치 그룹, 유대인과 로마의 구조 자체도 그렇게 되어 있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제사장들의 지배 하에서 백성들은, 인간은 노예로 살고 있었다. 이 장면이 복음서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그 어둠의 통치 세력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빛을 비추며, 우리가 나아 갈 “길 (“the way”) 를 직접 알려주시고 가르쳐 주셨다.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발 걸음을 따라 갈 때, 우리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릐 세력을 두려워 하지 않고 빛 속에서 걸어 갈 수 있다.
사랑과 평화를 주는 기쁜 소식 No. 31.
공중의 권세 잡은 자 (5) :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 대한 분별과 영적 전쟁
계시록 12장 9절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죽일 터인즉”(계11장 7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16장 14절)
“짐승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죽일 터인즉” 여기서 짐승이 일으키는 전쟁은 성도의 영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죽인다는 것도 성도를 타락 시킨다.로 해석할 수 있다. 영의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큰 용은 악의 총 우두머리다. 그러나 영이다. 그가 땅으로 내어 쫓겼다고 해도 땅의 육체를 입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럼 천상에서 땅으로 쫓겨 온 그는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했을까? 그와 함께 쫓겨난 그의 사자들(천사들)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할까?
“인간은 어떤 굴레도 없이 자유로운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스스로 창조 할 수 있다.” “우리는 능치 못 할 것이 없다.” “믿는 자에게 불가능이 없다.” “인간은 신과 일체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수 천 년 동안 지구의 여러 지역에 숨겨 진 채 전해진 비밀 문서들에 등장하는 메세지 들이다.
그런데 예수님 역시, 눈먼 이들과 노예 같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 하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의 메시지는 그 사회의 지배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두려워 말라” “평안이 있을 지어다.” “사랑 안에 거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일흔 번씩 일곱 번 까지 라도 용서하라” 분노의 이유를 제거한 것이다, 두려움의 뿌리를 근절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참 자유 함이 있음을 일깨워주고 그 어떤 것에도 Control 당하지 않고 살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줬다. “하나님이 네 안에 네가 하나님 안에” “내가 네 안에 네가 내안에”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너를 잡아 가둘 수는 없다.” “종교도, 권력고, 제도도, 저희를 가둘 수는 없다. 너희는 제도보다 귀하고 종교보다 귀하고 그 어떤 힘보다 귀하다. 천하보다 귀하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에도 존재 했던 그 어둠의 세력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통치하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이다. 이 최고 통치권자는 바울의 말대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목적은 인간을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방법은 많다. 그 중 하나가 인간 속에 두려움을 심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로 마음을 지키게 했다.
에덴에서의 일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자 먼저 두려움이 나타났다. 자신의 빈곤이 보였다. 그러나 이는 허상이었다. 헛것을 보면서 두려워 한 것이다. 순간 평화가 깨지고 육적인 원망, 미움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온다. 자연히 하나님과는 멀어진다.
밖의 세상에서도, 역사 속에서도, 정치 구조 속에서도, 인간 하나하나의 내면에서도, 가정에서도, 모든 공동체에서도, 바로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사역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경전 없이 신앙생활을 했다. 사도들이 보내고 남긴 여러 개의 편지와 기록 문서를 낭독하고 서로 성령의 체험을 간증하고 듣고 떡을 떼고 성찬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씩 구제나 사도들의 사역을 돕기 위해 필요한 돈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때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성도가 모이는 곳에는 항상 기쁨이 넘쳤고 풍성했다. 특별한 의식도 예식도 없었다. 그러나 사랑이 있었고, 평화가 있었다. 물론 몇몇 이단들이 그 모임에 나타나 잠시 잠깐씩 교회를 어지럽히다 사라진 적은 있다. 그러나 항상 모두가 느낄 정도의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콘스탄티노플의 전유물이 된 후 급속도로 타락했다. 교황(당시는 감독), 사제(당시는 장로)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이방신들을 섬기는 이방 사제들이 입던 의복을 도입하였다. 많은 의식과 장신구들도 도입하였다. 의상으로 경건과 권위를 치장하였다. 콘스탄틴이 절대적인 후원자였다. 그는 교회 건물들을 지어 감독들에게 나눠줬다. 그곳을 모임 장소로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역시 유대교의 회당과 이방 신전을 모델로 했다.
초대 교회에 나타나던 성령의 역사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마음이 회가 발라지고 그들이 보여주는 것 외에는 볼 수 없는 눈이 되었다. 모든 것을 그렇게 제도화 했다. 교회는 로마가 나른 나라를 점령하고 통치하는데 도움 되는 기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교회와 로마는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늘과 교감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한 성령의 역사나 체험은 종지부를 찍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사역은 여기서 끝났다고 선언하고 거역하는 자를 마녀재판으로 불태워 죽였다. 모든 것을 법제화 했다.
그러나 로마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망한다. 계시록에는 로마가 바벨론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로마가 망했다고 해서 그 나라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껍질은 바꿔졌으나 속은 그대로였다. 세계를 지배하려던 로마의 정신은 그 후계자들을 통해서 다른 조직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그대로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중세 암흑시대가 계속 된다. 영주, 왕, 교황, 이들이 합세하여 다시 백성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공동 목표는 인간이 더 이상 정신적으로 진보하지 못하게 하며, 예수님께서 주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말씀을 망각하고 오진 자신들을 거쳐야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복음을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 조직을 통해서만 신을 만나기를 바란다. 그들 자신들은 그 제도와 의식의 꼭대기에 앉아서 그들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통지자로 남는다. 예수님 복음의 완전한 왜곡, 그것이 교회의 거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웃었을 것이다. 그들의 목표가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교황은 조직과 예배 의식을 신성하게 해 그것으로 백성들을 복종시킨다. 교회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곧 신에게 도전하는 것이라는 의식을 세뇌시킨다. “감히 주의 종에게” “감히 하나님의 종에게” “감히 여호와의 사자에게” 여지없이 구약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모든 것을 영주가 소유했다. 교황이 왕에게 명령, 왕이 영주에게 명령, 영주가 자기 땅에 있는 백성에게 명령하는 체제였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과연 누구인가? 1천년 동안 백성들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노예처럼 통제당하면서 살아야 했다. 자유를 뺏고 평화를 뺏고 정신을 뺏고 영혼을 살해하는 것이 이들의 주 임무다.
예수님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해온 모든 어둠의 구조를 알아 보셨고 그 조직을 거부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했다. 경쟁이 없는 평화와 사랑의 왕국, 그 왕국의 비밀을 알려주고, 그 왕국에 대한 희망을 주고 계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할 때, 예수님이 약속하신 사랑의 평화의 왕국이 내 안에, 내 주변에 이루어지기 시작 한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들은 인간의 비명을 먹고 인간의 불행을 먹고 산다. 인간에게서 두려움이 사라지면 그들은 갈 곳을 잃는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굶주림으로 힘을 잃어 버리게 된다.